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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날카로운 낫을 들고 다닌다. 나무만 베어내는 게 아니다. 불이 지나가면 삶의 주변이 민둥해진다. 눈길 둘 곳이 없다. 어디 닿지 못하고 미끄러져 멀리 가버린다. 가슴의 상처는 덧나 무덤처럼 봉긋해진다. 검은 연기가 숨구멍을 틀어막은 탓에 누군가 찾아와 어루만져주지 않으면 풀이 나지 않는다.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만이 마당의 재를 쓸어낼 것인데, 일상이 무너져 있다. 기다림의 끝이, 아득하다.
달리기를 미루고 광장과 거리로
겨우내 잘 달리지 못한다. 계엄이 송곳 같다. 아침 뉴스가 바다이야기주소
눈을 찌른다. 속보를 뒤적이다가 아침이 간다. 탄핵을 기다리다가 겨울이 간다. 거실로 든 해가 갖은 이유를 들어 달리기를 막는다. 일상이 주저앉았는데 온전한 삶이 거기에 발이 걸려 또 넘어진다. 보복, 고문 같은 단어들은 일상의 반대말이다. 평온한 인생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안 되는 것들이다. 달리기를 뒤로 미루고 무던하게 거리로 나간다. 기다림은 자주 고통모바일릴게임 접속하기
이었다.
미얀마의 땅이 흔들렸다. 삶의 지각판이 죽음의 지각판에 밀린다. 진원지와 가까운 만달레이의 소식은 길과 함께 붕괴된다. 수취인을 잃는다. 자신의 안위보다 스님이 먼저인 깊은 불심, 자비가 손쓸 틈 없는 재해다. 미얀마 군부는 반군 지역을 포격하고 있다. 먹구름조차 고개를 돌린다. 권력의 악행이 치밀하다. 저기 친구가 있어요, 저기오션파라다이스 릴게임
엄마가 있어요. 저기, 벽돌을 걷어내는 맨손이 소리친다. 일상을 지켜주던 벽돌이 일상을 집어삼킨다. 걱정할 일이 많은데 미얀마 걱정까지, 노란색 껍질로 갓 피어난 봄이 부서진다. 다시, 새순을 기다려야 한다.
양곤의 새벽, 인야 호수는 부드러웠다. 기억난다. 바람은 따뜻했다. 중국과의 국경, 인도양 사이의 긴 회랑으로 온갖 것이 오고 갈IMBC주가
줄 알았다. 사람들은 온화했다. 밤새 이불 안에서 설렘으로 빚어진 미소를 입에 걸고 있다. 군부의 주머니 대신 사람들의 주머니에 행복이 가득 찰 줄 알았다. 스콜이 지나갔을 것이다. 구름까지 푸르게 물들인 여명이 다습했다. 일찍 일어난 사람들 사이를 달린다. 일상은 예측 가능해야 일상이다. 예측 가능하면 늘 서두를 것이 없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행복알라딘게임예시
을 기다리면 된다.
미얀마 발효 찻잎에 담긴 평화의 의미
미얀마에서는 찻잎을 음식 재료로 쓴다. ‘렛펫’이라 한다. 현시내님의 ‘미식 동남아’를 읽는다. ‘렛펫’이 평화의 상징이라 한다. “법원에서 평결 발표 전에 고소인과 피고인이 같은 접시에 담긴 렛펫을 먹음으로써 결정에 따르겠다는 뜻을 보인다고 한다.” 이 ‘렛펫’으로 만든 음식이 ‘렛펫또’다. 만달레이에서는 ‘참깨, 생마늘, 고추, 땅콩, 건새우’ 같은 여러 재료를 늘어놓고 취향에 따라 샐러드를 만든다. 양곤에선 모두 섞는다. 차의 쓴맛은 발효로 씻어낸다. 어린잎이 ‘렛펫’이 되기 위해서는 3~4개월이 걸린다. 맛있는 ‘렛펫’이 될 것이라는 믿음, 기다림은 종종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됐을 것이다.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났다. 2019년 9월이었다. 노란색 스쿨버스 증정식이 인상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미얀마 정부가) 라카인 문제 해결과 같은 민족 간 화합, 국가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로힝야 문제를 에둘러 짚고 간다. 로힝야족은 불교국가 미얀마에 건너온 인도의 무슬림이다. 인도를 지배한 영국이 보냈다. 인도로 미얀마를 통치하고자 했다. 일본이 동남아를 침략했을 때 영국은 이들을 무장시켰다. 무장한 이들은 총구를 일본이 아닌 승려, 농민을 향했다. 증오는 증폭된다. 미얀마 군부가 증오를 부추긴다. 군사정권을 끝낸 수치 여사의 민주주의는 불완전했다. 군 통수권은 여전히 군부가 갖고 있다. 군부에 의한 로힝야족에 대한 보복 학살이 있었다.
난관에 빠진 수치 여사에게 민주주의 숙성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사태의 책임에 몰렸다. 영국을 필두로 서구는 응원을 거둬들인다. 2021년 군부는 기다렸다는 듯 쿠데타로 수치 여사를 몰아냈다. 멀다, 험난하다,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그러나 옹호하고 싶다. 누구도 수치 여사가 무사히 길 끝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네피도의 새벽은 텅 비었다. 사람도 차도 웅크리고 잔다. 대로를 천천히 달리고, 인가 주변을 괜히 서성인다. 먹구름만 잔뜩이다. 네피도엔 수치 여사 혼자다. 군부가 여기를 미얀마의 새 수도로 계획하고 양곤에서 데려온 민주주의를 고립시켰다. 사람들 곁으로 수치 여사가 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기다림으로 지치기 전에.
로힝야족과 민주주의에 총구 겨눈 군부
우리처럼 미얀마도 쌀이 주식이다. 미얀마에서는 백미를 ‘터민’이라고 부른다. 향미는 ‘뻐싼므에’, 찹쌀은 ‘까욱닌’. 내전과 재해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견뎌낸 일상이 씨를 심는다. 미얀마는 한때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5만달러 규모의 쌀을 우리에게 보냈다. 가난이 가난을 돌봤다. 미얀마 인구의 70%가 농민이다. 이 기간산업을 1962년 군부의 쿠데타가 농지 국유화로 망쳐놨다. 우리가 오래도록 미얀마의 ‘농촌 개발사업’을 지원했다. 미얀마에서는 ‘새마을운동’이라 부른다. 성과가 있었다. 2018년, 172만t 쌀 수출로 쿠데타 이전의 모습을 회복했다.
미얀마 순방 전 ‘새마을운동’이라는 용어를 바꾸자는 외교부의 안이 있었다. 대통령이 직접 “바꿀 필요를 못 느낀다”고 답했다. 맞다, 누군가는 갈등을 줄여가야 한다. 때로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다. 온전히 상대방을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진다고 꼭 나쁜 것은 아니다.
11살 무렵 읽었던 옛날이야기다. 벼가 황금빛으로 익었다. 이웃집 사람이 말한다. “올해는 흰쌀밥을 드시겠군요.” 농부가 답한다. “아직 몰라요.” 타작 중이다. “올해 흰쌀밥 드시는 건 확실하네요.” “아직 몰라요.” 살짝 화가 난다. 부엌의 무쇠솥에서 쌀이 익고 있다. 묻는다. “이제 흰쌀밥을 못 드신다고 말하지 못하시겠지요?” 농부가 답한다. “그래도 먹어야 먹는 겁니다.” 이웃집 사람은 어처구니없다. 상을 차려놓고 앉은 농부에게 말한다. “이젠 확실하잖아요?” 그런데 농부는 밥그릇을 앞에 두고도 “아직 몰라요” 한다. 완전히 짜증 난 이웃집 사람이 상을 엎어버린다. 농부는 허허, 웃으며 말한다. “거봐요, 못 먹었잖아요.”
홍수도 가뭄도 겪었을 것이다. 전염병이 지나간 해도 있었고, 느닷없는 수탈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농부는 물길을 내고 비를 기다린다. 잡초를 솎아내고 뜨거운 햇빛을 기다린다. 결과는 그 뒤의 일이다. 흉년이 났다고 다음해의 수고를 거르지 않는다. 대학에 전 재산을 기부한 김밥 할머니가 위대한 이유는 그날 밤 다시 다음날 팔 김밥을 말기 때문이다. 오늘 수고하지 않는 기다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라토너들의 한 해는 겨울 훈련이 좌우한다. 체력을 더 많이 소진시키는 찬 바람이 독한 코치다. 따뜻한 방과 게으름은 경쟁자이고, 모자와 장갑은 훈련 파트너다. 기온이 낮으면 근육이 경직되고 자칫 부상과 가까워진다. 페이스를 낮춰야 한다. 되도록 코호흡으로 찬 공기를 바로 폐로 보내지 말아야 한다. 겨울일수록 삼갈 것들이 있다. 경쟁자를 조롱하지 말 것. 훈련한 만큼의 결과다. 승복할 것. 도덕성으로 이겨야 진정 이기는 것. 법의 노예가 되지 말 것. 패배자를 감싸는 방법을 알게 되면 더 좋겠지만, 그것까지는 좀더 성숙해진 다음에. 이제 승리가 오고 있다. 봄 대회를 맘껏 기다리면 된다.
양곤에서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간다. 메콩강이 가장 길게 흐르는 땅, 늦은 밤 노점에서 쌀국수를 먹는다. 낯선 채소들이 향기로 존재를 드러낸다. 라오스의 젓갈 ‘빠덱’에서는 흙냄새가 난다. 민물고기에 밴 삶의 냄새다. 새벽 메콩강에서 선상가옥들을 본다. 강이 되어 흘러다니는 삶을 본다. 가벼운 삶들만 나뭇잎처럼 떠돈다. 억압이 육지에서 쇠사슬을 끌고 다닐 때 강 위의 삶은 소용돌이 위에서 맴돈다. 아마도 내 몸무게의 절반은 미움, 분노, 증오가 아닐까. 기다림이 살찌운 것들은 아닐까.
기다림이 머물렀던 자리
일상은 달콤한 휴식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주섬주섬, 간혹 꺼내놓지 못할 때가 있지만 가방 안에 있는 것만으로 든든하다. 일상은 당분간 의자가 필요 없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를 돌아다닌다. 2024년 12월3일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의 저녁을 챙기러 다닌다. 먼지투성이의 골목, 가난하고 낮은 지붕들 아래를 살피러 다닌다. 다시, 일상이 돌아오면 지름길을 버리고 에둘러 달릴 것이다. 기다림이 머물렀던 자리를 오래 간직할 것이다.
글·사진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58번의 순방으로 40개 나라를 방문했다. 신동호 시인은 연설비서관으로 참모 가운데 유일하게 모든 순방 일정을 보좌했고, 새벽 시간을 활용해 낯선 나라를 달렸다. 그때 보고 느낀 감정은 문 전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떠나며’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시인의 달리기에 대한 생각과 함께 묵혀놓았던 순방지의 새벽 이야기들을 4주마다 연재한다.



미얀마 양곤, 인야 호수의 새벽.





라오스 비엔티안, 선상가옥들이 메콩강에 가볍게 떠 있다.





미얀마 수도 네피도, 새벽 거리가 텅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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