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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투기 튤립 광풍 거품 꺼진 뒤 정물화에 등장한 시든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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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명 회사명 : 라이더스 전화번호 담당자 : 라이더 전화번호 전화번호 : 팩스번호 팩스번호 : E-mail E-mail : ridebbuu@naver.com 작성일 25-10-1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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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본 세계 최초 주식시장 2024년 12월 기준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 수는 1403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성인 셋 중 한 명꼴로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셈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 000 시대 를 열겠다고 공언한 만큼 개인투자자의 규모는 앞으로 더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주식 투자가 이렇게 국민 재태크 로 부상하는 시점에서 주식시장이 언제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미술을 통해 돌아보는 일은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는 1611년 네덜란드에 세워진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 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 헨드릭 더케이서르 의 이름을 따 케이서르 증권거래소 로도 불립니다 가로 60m 세로 35m의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로 가운데 뜰을 사방의 아치형 회랑이 둘러싼 모습이었습니다 비슷한 형식의 건물이 이웃 도시인 벨기에 안트베르펜이나 바다 건너 영국 런던에 한발 앞서 지어졌지만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를 세계 최초로 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가 일종의 기업공개 를 통해 주주 자격을 국민에게 개방한 최초의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최초의 주식회사에 투자된 지분을 오늘날의 주식처럼 2차 거래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 바로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다 세계 첫 주식회사 VOC에 몰린 돈아쉽게 원래의 건물은 지반 침하로 철거됐습니다 하지만 17세기 그림을 보면 거래소 건물 중앙에 넓은 뜰이 있어 많은 사람이 일시에 모여 거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방에 회랑이 있어 비바람이 불어도 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회랑을 따라 42개의 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이 기둥들에 오늘날 증권거래소의 전광판이나 모니터처럼 주식이나 거래되는 상품들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펀드매니저들이 자리를 잡고 거래를 이끌었습니다 사직 하늘채 리센티아

600평 넘는 공간에 한창 때는 1000명이 넘는 펀드매니저가 활동했다니 상당히 박진감 넘치는 장소였을 테다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의 부에 대한 열망은 오늘날 못지않았습니다 거래소는 오전에만 열렸는데 오후가 되면 주변 광장으로 밤에는 술집과 식당으로 옮겨가며 거래가 이어졌습니다

누구든 투자에 성공하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다는 기대가 사람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암스테르담 인구 20만 명 중 최대 1만2만 명이 주식 거래에 참여했다고 하니 17세기판 개미운동 이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셈입니다 VOC가 1602년 8월 처음 세워질 때 투자자를 통해 모은 돈은 총 642만9588길더 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367만9915길더가 암스테르담 지사에서 모였습니다 참고로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은 1길더 로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9500억 원대의 자본금이 일시에 모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VOC의 첫 IPO에 투자한 암스테르담 시민 수는 1143명이었습니다 가장 큰손 은 피터르 링겐스라는 상인으로 10만5000길더를 투자했습니다 이사크 러 메러라는 상인도 8만5000길더를 투자했습니다

전체 투자자 중 절반 정도는 1000길더 미만을 투자했습니다 그중 100길더 안팎의 소액투자자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의 직업을 보면 하루 일당이 0 5길더였던 하녀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시민들도 적극 투자에 나섰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렇게 VOC가 인류 최초로 주식을 공개 발행해 시민 자본을 끌어들여 장거리 무역에 독점적으로 나선 결과 엄청난 이익을 거뒀고 여기서 얻은 이익은 투자자들에게 곧바로 돌아갔습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겸 경제학자 로데베이크 페트람이 VOC 암스테르담 지점에서 16021697년 이뤄진 851점의 주식 거래를 분석한 2014년 연구에 따르면 1602년에 100길더였던 VOC 주가는 설립 4년 만인 1606년 200길더를 넘어선다 이후 등락을 반복하지만 크게 보면 우상향하면서 1700년에는 500길더까지 오른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최초에 100길더를 투자한 투자자가 배당금까지 꾸준히 재투자했다면 1700년에는 6만5000길더로 불릴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VOC의 규모도 놀랍게 성장합니다 1670년 무렵 VOC는 상선 150척 군함 40척 직원 5만 명 군사 인원 1만 명을 거느린 초대형 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당시 시가총액은 오늘날로 치면 약 8조 달러

현재 시점의 애플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를 합친 것보다 더 컸다 자본주의의 그림자 비춘 튤립 물론 이런 자본시장의 급성장은 큰 부작용도 낳았습니다 튤립 광풍 이 그것입니다 거품의 발단이 주식이 아니라 꽃이라니 의아할 수 있는데 당시 VOC 주식이 고액이라 보통 사람은 거래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새로운 투자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바로 튤립이 투자 대상으로 급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튤립은 당시 유럽에 막 수입돼 온 이국적인 꽃이었습니다 탐스러운 꽃망울과 함께 수년간 재배해야 꽃을 피울 수 있어 희귀했습니다 이 때문에 좋은 투자 대상이 됐다가 1636년에서 163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동안 막대한 투기자본이 모이면서 튤립 구근 한 뿌리가 집 한 채 가격을 넘어서는 경우도 나왔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가격이 너무 올랐다고 여겨 튤립 투기를 멈추자 시장은 얼어붙고 이때부터 튤립 가격은 급격히 하락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적 투기로 알려진 튤립 광풍은 이렇게 자본시장이 급성장하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벌어집니다

알려진 대로 튤립 투기에 대한 거품이 꺼지면서 파산자가 속출하자 네덜란드 정부가 개입해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다 흥미롭게도 튤립 광풍이 지나간 후에 튤립은 네덜란드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합니다 꽃이나 책 음식 등 사물만 그리는 그림을 정물화라고 하는데 이런 정물화가 17세기 네덜란드 가정집에 한 점씩은 걸려 있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예를 들어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가 1642년에 그린 정물화에도 튤립이 여러 꽃과 함께 한가득 자리하고 있습니다 탐스러운 꽃들 사이로 시들어가는 꽃도 보인다

주영 더 팰리스 지븐 이는 화면 중앙에 놓인 해골과 함께 찰나의 아름다움과 시간의 덧없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다 타버려 연기조차 없는 담배 모래시계 그리고 손대면 깨질 듯한 유리잔 등 그림 속에는 물욕과 사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물들이 가득합니다 만개한 꽃들 사이로 유독 두드러져 보이는 시든 튤립도 있습니다 이는 네덜란드 국민들에게 5년 전 불어닥친 튤립 광풍을 일깨우면서 나아가 삶의 종착점은 결국 죽음이라는 점을 되새겨 줬을 것입니다

당시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던 네덜란드인들이 이처럼 허무함을 일깨우는 정물화를 좋아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욕망을 다스리는 그림이 일종의 경고문이 돼 가까이에 있었기에 네덜란드 경제는 위기 속에서 나름대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증시가 신고가 랠리 를 펼치는 등 오래간만에 활황세를 보이면서 균형 있는 메시지가 담긴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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