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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간첩 조작'에 관여한 전직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인 '고문 기술자' 고병천에게 구상금을 청구했지만 연달아 최종 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상권 행사에 있어 공무원 면책 보장을 중시하는 법리가 유지된 영향이 컸다. 지휘부가 아닌 중간 간부에게만 소송을 제기한 게 패착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고문 피해자에게 일단 배상한 뒤 가해 공무원에게 돈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막히고 있는 셈이다.

원인 행위 적극 주도해야 구상권 가능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국가가 고병천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KT 주식
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정부가 고병천에게 구상금을 청구한 건 1983년 발생한 '재일교포 서성수 간첩 조작 사건' 때문이다. 당시 처가 방문을 위해 한국에 입국한 서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보안사에 연행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이후에 고문 등에 의한 날조였음이 드러나 2017년 재심에서 혐의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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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는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이겼다. 정부는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효(불법 행위일로부터 5년)가 지났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재심 무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진 서씨가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 사유가 있었다"며 정부 주장을 물리치고 9억여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정부가 고병천을 상대로 추천종목
제기한 구상금 소송에선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이 배척된 경우 정부가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게 신의성실 원칙에 부합하느냐'가 쟁점이 됐다. 이례적 사정이 인정돼 정부가 뒤늦게 물게 된 배상금을 개인한테 부담하도록 하는 게 타당하냐는 것이다.
그간 국가의 구상권 행사와 관련된 일반적 판례는 "공무원의 안정적 직무 집행을 보장하기 위해 파워스탁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과거사 사건에서 대법원은 2016년 '원인 행위'를 공무원이 '적극 주도'한 경우에만국가의구상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구상금 청구 소송 결과는 1·2·3심 모두 정부 패소였다. 고병천이 불법 행위에 가담했지만 '적극 주도'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사건 당시 그의 계급은 결재권주식업
없는 준위였고 △그가 했다고 확인된 언행도 치명적인 불법 행위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법원 결론이었다.

"불법 수사≠재심 지연 원인"... 1심 승소→2심 패소



2019년 6월 11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보안사 고문가해자 고병천 등에 대한 구상권 행사 촉구 법무부 청원 기자회견'에서 고문 피해자 윤정헌(왼쪽부터)·이종수·박박씨가 청원서를 들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제기한 또 다른 소송에서도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고병천 손을 들어준 원심을 19일 확정했다. 1984년 간첩으로 몰려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던 재일교포 윤정헌씨에게 지급된 배상금이 청구 대상이었다.
이 소송은 정부의 승소 가능성이 비교적 높게 점쳐졌다. 고병천이 윤씨 재심에 증인으로 출석해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가 위증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고병천이 불법 수사에 앞장섰다는 물증이 부족했던 서씨 사건과는 사정이 달랐다.
실제로 구상권 소송 1심에선 국가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다. 앞선 국가배상사건에서 법원이 윤씨 주장을 받아들였던 건 그에 대한 재심 무죄 선고가 늦었기 때문이고, 이는애초에 고병천을 포함한 보안사 수사관들이 윤씨 사건을 조작하고 재심 과정에서 위증한 탓이라고 봤다.
항소심은 그러나 고병천의 수사 관여 및 위증 행위가 재심 판결이 지연된 직접적 이유가 될 순 없다며 결론을 뒤집었다. 불법 수사가 재심 지연의 주된 원인이라고 해도, 서씨 사건과 마찬가지로 고병천이 적극적으로 사건 조작을 이끌었다고 단정하긴 힘들다고 봤다.

고병천 상급자에게 행사했으면 달랐을까
2개 재판 결과를 놓고 보면, 법원은 △고병천이 '재일교포 간첩 조작 사건'의 주동자라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불법 수사에 가담한 행위가 앞선 국가배상소송에서 정부의 소멸시효 주장이 수용되지 않은 직접적 원인도 아니라서 △구상권 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국가 폭력 사건 대리 경험이 있는 법조인들은 "불합리한 결론"이라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들이 소멸시효 완성 후 국가배상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건 근본적으로 불법 수사 피해로 인한 '심리적 억압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인데, 고문 수사관의 책임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윤씨 재심을 맡았던 장경욱 변호사는 "정부에 비해 경제적 자력이 부족한 공무원을 보호하는 취지의 판례를 반인륜 범죄에 적용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도 "이런 판단대로라면 상당수 과거사 사건에서 구상금 회수가 불가능해진다"고 짚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대공처장 등 고병천의 상관을 피고 명단에 함께 넣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이들에겐 지휘·감독권이 명확히 인정된다는 점에서 불법성 입증이 수월하고, 그런 불법 행위가 재심을 방해해 뒤늦은 배상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주장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수지김 사건' 배상 이후 정부는 2003년 장세동씨를 포함한 국가안전기획부 고위 간부 5명에게 구상금을 일괄 청구했다. 당시 법원은 "안기부의 계속적 사건 은폐가 소멸시효 항변 배척의 이유인데, 장세동은 안기부의 최종 결정권자"라며 그에게 책임을 물은 청구를 일부 받아들였다.
윤씨 관련 구상금 소송을 심리한 항소심 재판부도 "국가가 고병천에게만 구상권을 행사했는데 상급자와 그의 차이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련의 행위로 구성된 불법 행위 가운데 그에 대한 구상권 행사가 허용될 정도로 그가 원인을 주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원곡의 공익법률지원단체인 파이팅챈스 변상철 소장은 "과거사 사건 특성상 개별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윗선까지 구상권을 행사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사건 관여자 중 한 명에게만 소송을 제기하면 그 사람이 물어야 할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계산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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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 끝나지 않는 눈물


• 조작, 누가 물어낼 것인가... 28세 재일교포는 모국서 간첩이 됐다 [혈세 배상 대해부](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414510005665)
• 국가배상, 2조 넘게 나갔는데... 법무부, 가해자 구상권 통계조차 없다 [혈세 배상 대해부](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414510003525)




② <2> 사라진 청구서


• 고병천에 구상금 회수 실패... 법원은 왜 '고문 기술자' 손 들어줬나(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414500002890)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