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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이지 않은 직업이 있을까요? 평범하고도 특별한 우리 주변의 직장·일·노동. 그에 담긴 가치, 기쁨과 슬픔을 전합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의 베테랑 정신건강전문요원이자 전 상담팀장인 주상현씨가 18일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따르르릉~”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11년째 일하는 베테랑 정신건강전문요원이자 전 상담팀장인 주상현(46)씨는 상담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수년 전 만난 한 청년이 떠오른다. 수화기 너머 사연을 털어놓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다급하게 현장으로 달려갔다. 주가하락이유

상현씨를 마주한 청년은 고개를 떨구며 힘겹게 입을 뗐다. “배고파요. 사흘간 굶었어요.” 상현씨는 상담이고 뭐고 다 미루고 청년을 식당으로 데려가 순댓국을 대접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한 그릇이 생명을 살렸다.



18일 서울 중구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 자살인터넷신천지
유족들이 적은 메모지가 상담실 게시판에 붙어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생명의 최후방을 지키는 자살예방 상담원
2024년 자살 사망자 수 1만4,439명.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삶을 등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자살이 국가적 재오공 주식
난이 된 우리 사회에서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생명을 구하는 최후의 안전망이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는 상담 전화(1577-0199) 운영, 자살 고위험군 발굴, 사례자 모니터링, 유족 긴급 지원, 자살 예방 교육 등을 맡고 있다. 그중에서도 상담 업무는 특히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생을 붙잡아 보려는 절박한 구조 신호에 응답하는 핸드폰증권
일이기 때문이다. 긴박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서울시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로 연계해 현장 구조 활동도 지원한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상담 중에는 한마디도 흘려들을 수 없다. 예전에 한 사례자는 “나, 죽을 거다”라는 한마디만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상현씨는 황급히 경찰 신고부터 했다. ‘차라리 장난 전화였으면···.’ 얼마 후 경찰과 초보주식강좌
소방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 화장실에서 자살 시도자를 찾아내 병원에 이송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가 끊어진 뒤 끝내 사례자를 못 찾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날은 잠도 못 자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상담 업무 중인 주상현씨. 남동균 인턴기자


상현씨는 “당신이 뭘 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맞닥뜨릴 때마다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도 보호자 인계, 72시간 응급입원, 복지서비스 연결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수밖에요. 사례자가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맙다’ ‘마음이 진정된다’고 하면, 꼭 당부 말씀을 드립니다. ‘언제든 힘들면 또 전화 달라’고요.”
하지만 상담원도 사람인지라 정신적 한계에 다다를 때도 많다. 술 취해 전화하거나 매일 죽겠다고 협박하는 사람도 있고, 때론 폭언과 성희롱도 당한다. 하다못해 스포츠 경기에 졌다며 화내는 사람도 있다. 상담원 목소리 톤이 낮으면 ‘왜 더 우울하게 만드냐’고 트집 잡고, 조금 밝게 응대하면 ‘뭐가 그리 신나냐’고 윽박지른다.
상현씨는 “이유 없이 욕먹는 건 차라리 괜찮다”며 “악성 민원인 때문에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전화를 못 받는 게 속상하다”고 말했다.

낮은 근속률, 고용 불안정··· 자살 예방 대책도 흔들린다



게티이미지뱅크


상담원이 모든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사후 모니터링 과정에서 사례자가 숨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상담원도 트라우마를 겪는다. 사례자가 마지막 통화한 곳이 자살예방센터라면 그 충격은 배가된다. 상담원 심리 치유 프로그램도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심적 고통을 호소하기 전에 퇴사하기 때문”이다.
근로 조건도 열악하다. 낮 시간에는 25개 자치구 산하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상담 전화가 분산되지만, 야간과 주말에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가 전담한다. 365일 밤낮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상담원 15명 정도가 3교대로 돌아가며 하루 80~130건을 처리한다.
상담원들이 계속 통화 중이라 대기만 하다 연결되지 못한 전화가 100통이 넘을 때도 있다. “오늘 왜 한가하지”라는 말은 금기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통에 불이 난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와 각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직영과 민간 위탁이 혼재돼 있다. 고용 형태도 공무직, 무기계약직, 시간선택제, 임기제 등이 뒤섞여 안정성이 떨어진다. 실제로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상근인력의 평균 근속 연수는 3.3년(2021년)에 불과하다. 센터 홈페이지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채용공고가 올라온다. 상현씨가 2018년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유다.
“똑같이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일하지만 근로 조건은 제각각이죠. 자살 예방은 국가 과제인 만큼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를 공공 위탁이나 재단 형태로 운영할 필요가 있어요. 상담원들을 공무원으로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겁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정신건강전문요원 주상현씨가 전화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 그는 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남동균 인턴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연일 자살 문제를 지적하며 범정부 자살 대책 기구 설립을 지시했다. 상현씨는 “대통령의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솔직히 겁난다”며 “지금도 현장은 지쳐서 나가떨어질 지경인데,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얼마나 더 노동력을 갈아 넣어야 할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인력을 늘리지 않으면 좋은 대책도 공염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강 벤치에 앉은 그에게 누군가 손을 올렸다
상현씨는 “자살을 ‘막는다’에서 ‘멈춘다’로 개념을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거칠게 얘기하면 공적 개입이 이뤄지더라도 궁극적으로 개인의 선택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잠시 멈추게 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따뜻한 한 끼 식사,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안가’ 같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쉴 수 있다면 다시 살아갈 이유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상현씨는 잊지 못할 경험 하나를 꺼냈다. 몇 년 전 마포대교를 지나다 노을에 반해 벤치에 앉았는데, 등 뒤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회피’. 우리 사회가 자살을 대하는 태도였다.
괜스레 씁쓸해지던 찰나, 어느 노인이 상현씨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괜찮냐”는 한마디와 함께.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어요. 자살 예방은 거창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우리가 작은 관심을 보여준다면 누군가는 힘겨운 시간을 좀 더 버텨낼 수 있을 겁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