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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신 음식을 픽업했습니다.’ 휴대폰 화면에 푸시알림이 뜬다. 나는 배달앱을 터치한다. 매장 앞에 있던 오토바이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문하신 곳을 향해 출발했습니다’라는 문장이 지도 밑에 뜬다. 배달예정시간은 9분. 엄지와 검지로 지도를 확대한다. 오토바이가 움직이는 모습이 분명해진다.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지도 속 도로와 골목을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지켜보곤 한다. 오토바이 그림이 달려오는 모습을 엄마 휴대폰 동영상으로 찍어두기도 한다. 누군가 나를 위해 달려오는 느낌,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 좋아서. 엄마 휴대폰도 엄마 한네트 주식
신용카드도 엄마 주민등록증도 내가 맡고 있다. 엄마는 코에 호흡기도 끼고 주사액도 서너개씩 달고 있는 환자다. “혹시 모르니까….” 며칠 전에 엄마는 통장 비밀번호도 적어주었다. 죽은 아버지의 첫 택시였던 포니 자동차 번호였다. 알 수 없는 불안에 잠 못 드는 밤이면 엄마 휴대폰에 담아둔 배달 동영상을 꺼내본다. 미로 같은 지도를 직선만으로 빠져나오는 오토릴게임 공략법
바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불안의 그림자가 얼마간 희미해진다. 거기에는 엄마와 나를 향해 최단 거리로 달려오는 어떤 마음이 있다. 차갑게 식어버리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이 있다. 그 뜨거움이 불안으로 잔뜩 쪼그라든 심장을 열기구처럼 부풀려준다.
병원 주변 지도는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하고 뒷골목도 복잡하지 않은데 아무리 봐도 익숙해백광소재 주식
지지 않는다. 병원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한 게 한두 번도 아닌데. 항암주사를 여섯 차례나 맞느라 병원을 안방처럼 드나든 엄마가 암병동에 다시 입원한 지 보름이 넘어간다. “너 먹어라. 나는 통 못 먹겠다.” 오늘 점심 배식도 엄마는 국만 한술 뜨고 말았다. 소고기무국, 애호박무침, 잔멸치볶음, 연근조림에 엄마가 좋아하는 갈치구이까지 나왔는데. “이걸 내가 왜대호피앤씨 주식
먹어?” 나는 보조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병실을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뭘 먹으라는 말과 요새 뭐 하냐는 말이다.
오늘의 배달 메뉴는 치킨이다. 치킨도 급탕실에서 먹을 것이다. 짜장면도 족발도 급탕실 구석에 서서 먹어치웠다. 잠을 잘 못 잔 날은 더 많이 먹게 된다. 더 맵고 더 기름진 것이 당긴다. 오늘은 그냥 치킨이 아전투개미
니라 고추바사삭 치킨이다. 화장실 옆자리라 수시로 깨긴 하지만 어젯밤에는 정말 한숨도 못 잤다. 옆 침대의 코 고는 소리가 익숙해질 만하니 새로 들어온 건너 침대에서 잔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가 누군가의 휴대폰 알람 소리에 깼다. 새벽 4시였다.



암병동은 10층짜리 병원 건물의 8층을 통으로 쓰고 있다. 8A병동부터 8C병동까지 세 개의 병동이 디귿 자 모양으로 이어진다. 혈액주머니, 생리식염수 주머니, 항생제 주머니, 영양제 주머니를 거치대에 주렁주렁 걸고 휠체어를 미는 산책은 매번 8C병동 끄트머리에서 돌아서야 한다. 미음 자 건물로 지었다면 달리기 트랙처럼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을 텐데. “숨이 넘어갈 것 같이 코를 골던데 그러다 큰일 나. 어머니 오래 모시려면 체중을 좀 줄여야지.” 산책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가니 옆 병상 노인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소리를 한다. 2인실에 자리가 안 나 어쩔 수 없이 6인실에 머물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다.
병원을 향해 절반쯤 달려오던 오토바이가 뒷골목 어딘가에서 멈춘다. 큰 도로도 아닌데 이상하다. ‘주문하신 곳으로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열심히,라는 부사가 무색하게 멈춤이 길어진다. 지도를 더 키워봐도 마찬가지다. 배달앱 화면을 닫았다 열어보아도 그대로다. 그러다 결국 배달 예정시간마저 넘긴다. 나는 배달앱 고객센터로 전화한다. “배달 예정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오토바이가 중간에 멈춰 있어요.” “확인해보겠습니다.” 고객센터에서 곧바로 전화가 온다. “배달 지연으로 취소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왜 계속 멈춰 있을까요?” “콜을 안 받아 저희도 파악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병원 근처의 다른 치킨 매장을 알아본다. 치킨 매장은 많다. 프랜차이즈도 없는 게 없다. 보통 선택의 기준은 동선이다. 오는 도중에 갈래 길이 많을수록 좋다. 어떤 경로를 택할지 상상할 여지가 많은 곳이 좋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 오토바이는 왜 나아가지 못했을까? 왜 한자리에 붙들려 있었을까? 멈춰 선 오토바이 그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도를 살펴볼수록 지도에서 사라진 오토바이가 점점 더 또렷해진다. 사고라도 난 걸까? 어디 다친 건 아니겠지? 내가 주문한 치킨을 가지고 오다 사고로 죽었는지도 모른다.
늘 배달음식을 건네받는 장례식장 건물 입구 흡연구역에는 헬멧을 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엄마 휴대폰 동영상의 마지막 화면을 캡처한다. 내 휴대폰 지도앱을 열고 현재 위치를 띄운다. 두 개의 화면을 나란히 보며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빨간 점이 오토바이 그림이 멈춰 선 지점을 향해 움직인다. 최단 경로로 방향을 잡는다. 병원 후문을 나와 대로변을 걷다가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2층짜리 카페 건물을 끼고 안쪽 골목으로 접어든다. 멈춰 서지만 않았어도 오토바이 그림이 달려왔을 동선을 빨간 점이 거슬러 간다. 차갑게 식어버리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걸음을 재촉한다.



내가 발을 내딛는 만큼 움직이는 빨간 점. 빨간 점이 움직이는 만큼 나도 이동한다. 내가 움직여서 빨간 점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빨간 점이 움직여서 내가 움직이는 것 같다. 오토바이 그림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자리에는 오토바이 그림 대신 빨간 점만 불안하게 떠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오토바이는 보이지 않는다. 사고 현장을 벌써 치운 걸까. 가슴이 쿵쾅거린다. 빨간 점이 휴대폰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나는 미용실에 들어가 묻는다. “좀 전에 이 앞에서 오토바이 사고 안 났어요?” “오토바이 사고요?” 바로 옆 가게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다. 건너편 편의점에 가서 다시 묻는다. “모르겠는데요.”
오토바이는 어떻게 된 걸까. 배달원은 왜 연락이 안 된 걸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다른 치킨 매장에 주문했어야 했다. 아예 배달을 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식은땀이 나면서 속이 울렁거린다. 머리가 핑 돌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나는 간신히 초콜릿 하나를 집어와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엄마 신용카드를 건네고 계산도 안 끝낸 초콜릿을 입안에 허겁지겁 밀어 넣는다. 카운터 옆에 진열된 막대사탕도 몇 개 집어온다. 사탕의 오렌지 맛이 또렷이 느껴질 즈음 어지럼증이 가시면서 흐리던 시야가 맑아진다. 나는 담배도 한 갑 주문한다. 휴대폰이 울린다. 8A병동 간호사실 번호다. “CT 촬영 오더가 내려왔는데 환자분이 자리에 안 계시네요.” “금방 갈게요.” 나는 전화를 끊고 황급히 편의점을 나선다.
“어르신!” 편의점 직원이 외친다. “어르신, 카드 가져가셔야죠!” 나는 신용카드를 건네받고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엄마는 그새 어디로 간 걸까. 화장실 오가는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바지 주머니 안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엄마 휴대폰은 놓고 왔어야 했는데. 자리를 비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니 처음인 것처럼 낯설다. 길은 복잡하고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병원에 가자마자 혈압약과 당뇨약부터 먹어야겠다. 지도앱을 열고 현재 위치를 띄운다. 어디가 어딘지 감이 오지 않아 지도를 확대한다. 가게 이름들이 표시될 때까지 확대한다. 빨간 점도 커진다. 다시 병원을 향해 뛰듯이 걷는다. 목에 건 출입증이 들썩들썩 춤을 춘다. 김용례 보호자 출입증. 바코드 위에 적힌 글자를 볼 때마다 헷갈린다. 김용례의 보호자인지 김용례가 보호자인지. 그러니까 내가 엄마의 보호자라는 건지 엄마가 나의 보호자라는 건지. 어느 쪽이든 내가 병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제가 가고 있어요.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어머니.




“배달 음식이 식기 전에 달리는 일에 담긴 ‘온기’와 성실함에 가슴 뭉클해져”■ 작가의 말

배달과 돌봄은 지금 한국인의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하고 보고, 또 누구나 한번은, 언젠가는 경험하게 될 일이다. 김경욱(사진) 작가의 ‘가고 있습니다’는 이 두 가지 소재를 엮어 ‘삶의 온기’를 달리기 계주처럼 이어가는 풍경을 전한다. 배달하는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삶’이라는 숙명적 경로 위에 서 있다.
“배달음식을 시키고 배달앱 지도에서 오토바이 그림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다 떠올렸어요.” 김 작가는 “모르는 사람이 먹을 음식이 식기 전에 전력으로 달리는 일에 담긴, ‘이상한 온기’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린 모두 다른 존재들에게 건네받은 온기를 잠시 품고 있다 언젠가 또 다른 존재들에게 넘기고 식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 배턴을 운반해야 할 구간이 끝나도 달리기는 계속되겠지요. 중요한 것은 배턴을 놓치지 않고 다음 주자에게 따끈따끈한 상태로 넘겨주는 것일 테고요.”
김 작가는 ‘소설, 한국을 말하다’ 시리즈를 “달릴 차례를 기다리는 이어달리기 주자처럼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따라 읽고 있다”면서 “신문이 날마다 배달하는 그 성실함의 온도에 상상력의 온기를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고 있습니다’를 썼다고 했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많은 타인들의 성실함에 기대고 있는지 생각하면 뭉클해집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믿습니다.”
1993년 등단한 김 작가는 장편 ‘아크로폴리스’ ‘천년의 왕국’ 등을 썼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을 받았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동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