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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상주 은모래해변 앞 금양천가에 동고동락협동조합 사무국장인 청년 에디(별명)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의 옆에 등이 검고 배가 하얀 새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데 움직이지 못한다. 긴 다리가 힘없이 늘어졌다. 칼바람에 에디의 귀가 빨갛다. 그는 이 새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다. 새 사진을 찍어 ‘새박사’에게 보낸다. 박사학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이 존경을 담아 그렇게 부르는 장성래(69)씨에게서 답장이 온다. “이 새는 겨울철새 회색머리아비.”
척하면 척, 새에 관해선 다 아는 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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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상주면 ‘새박사’ 장성래(69)씨. 장성래씨 제공


‘새박사’는 내 이웃집 진돗개 순둥이를 산책시키다 알게 됐다.(제1537호 참고) 붉은 벽돌 모텔 ‘태양장’ 주인이기도 한 그는 휴가 온 사람들이 버리고 간 유기견 12마리를 부인과 함께 돌본다. 이황소투자아카데미
제 영업하지 않는 이 모텔은 ‘애플’이라고 쓰인 러닝셔츠를 입은 치와와 ‘꼬까’와 친구들이 점령했다. 해 질 녘이면 베레모를 쓴 새박사와 아내는 묶인 채 방치된 개들에게 물과 밥을 주러 동네를 돈다. 나이 든 모텔 안 컴퓨터엔 어마어마한 새 사진이 쌓여 있다. 몰입과 사랑의 증거들이다.
새박사의 고향은 경남 남해 삼동면이다. 겨울이면 초가온라인 릴게임
집 지붕에 참새가 깃들었다. “어릴 때부터 새를 좋아했어.” 어린 그에게 아버지가 참새를 잡아 다리를 묶어 주면 그는 이 ‘반려조’와 함께 다니다 날려 보냈다. 동네 개천엔 물총새가 살았다. 비탈에 알을 낳았다. “그 모든 게 신기했어.”
어린 그가 봄밤 어스름에 집으로 향하면 동네 골목 돌담길 200여m를 쏙독새 소리가 따라왔다. 쏙독쏙신한지주 주식
독…. “쏙독새한테는 슬픈 전설이 있어. 머슴 사는 애가 소 풀을 먹이다 잠이 들었어. 소가 사라졌어. 비가 내리는데 아이는 소를 찾아 헤맸어. 아이는 한기가 들어 결국 죽었어. 그 애의 혼이 봄에 돌아와 쏙독쏙독 운다는 거야.”
쏙독새와 함께 봄밤을 걷던 아이는 새 공부를 이어가진 못했다. 집에서 가까운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6무료충전바다이야기
년부터 20년 동안 원양어선을 탔다. 태평양, 인도양에서 참치를 잡아 일본에 팔았다. 한번 항해를 떠나면 6개월에서 1년 반 뒤에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끔 작은 새들이 갑판에 앉아요. 쌀 가져다주고 물 떠다놓고 지켜봤지.”
1970년대 말, 선원 생활은 고달팠다. 일본이 폐기한 것을 재활용한 낡은 배에서 냉난방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루 2~3시간 자며 일한 날도 숱했다. 1990년대 들어 배 규모가 커지고 시설도 좋아졌다. “적성엔 안 맞았어. 힘들었지. 원양어업이 요즘 반도체처럼 외화벌이를 많이 해 나라 발전에 이바지했는데, 알아주지 않는 거 같아 서운해. 연극이나 영화 보면 원양어선 선원들을 육지에서 깡패질 하거나 사업 망한 사람으로 그리잖아. 술 먹고 싸우고…. 배 타는 사람 중에 나처럼 평생 술·담배 안 하는 사람도 많아.” 12년은 선장으로 일했다. 망망대해에 떠, 그는 조류도감을 봤다.
20년 동안 배 위에서 본 자연의 모습
바다에서 보낸 20년 동안 그는 잊지 못할 풍경을 보았다. 하늘에서 폭포처럼 스콜이 쏟아졌다. 폭 12m 배 한쪽엔 비가 내리는데 다른 한쪽은 말라 있었다. 섬 위에 갈매기떼가 하얗게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죽은 고래 위였다. 돌고래 수백 마리, “수십 마리가 아니야, 수백 마리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선과 경주를 벌였다.



‘새박사’ 장성래씨가 찍은 팔색조. 장성래 제공


그는 46살에 배를 떠났다. “더 이상은 싫더라고.” 남해에 태양장 모텔을 차리고 자원봉사를 하며 그는 평생 사랑인 새 관찰을 시작했다. 이제까지 남해에서 조류 250종을 찾고 조류 천연기념물 24종 서식을 확인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팔색조인데 여전히 쫓아다니고 있다. 세계적으로 2500~1만 마리밖에 없는 새다. 팔색조 둥지를 찾아 남해 골짜기란 골짜기는 다 뒤졌다. 2012년, 너무 험해 들어가지 못한 골짜기 하나만 남았다. 포기할까 고민했다. “딱 여기만 들어가보고 끝내자 했어. 들어가보니 팔색조 한 마리가 낮게 날고 있는 거야. 둥지에 알이 3개 있더라고. 곧 6개로 불었어.” 한 달 동안 팔색조 새끼 6마리가 모두 둥지를 떠날 때까지 관찰해 사진으로 기록했다. 어느 순간부터 위장도 필요 없었다. 팔색조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든 게 궁금했어. 한배에서 나도 다 달라. 배짱 좋은 놈은 먼저 날아가지. 사람 사는 거랑 똑같아. 마지막 새끼가 날아갈 때 눈물이 났어.” 그가 기록한 팔색조 육아 과정은 뉴스에 나왔다. 기록을 모아 책 ‘팔색조의 육아 비밀’을 냈다.



‘새박사’ 장성래씨가 찍은 황금새. 2014년 6월 촬영했다. 장성래 제공


눈썹이 노랗게 빛나는 황금새도 그가 “딱 포기할까 할 때” 찾아왔다. 애벌레를 문 황금새를 보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 둥지를 찾지 못했다. 지쳐 그루터기에 철퍼덕 앉아 있다 고개를 들었는데 나뭇가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가지만 색깔이 달랐다. 가지를 따라가보니 나무에 난 구멍에 황금새 둥지가 있었다. 황금새 번식을 확인한 건 국내에서 처음이었다. “집에 돌아갈 땐 항상 불안해요. 새들이 해코지당하지 않을까.”
어느 겨울, 그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다. 뒤에 앉은 공무원들이 청둥오리를 먹으러 간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장소를 물어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전화해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군청, 경찰서에도 모두 연락했다. 철새 사냥을 진짜 멈췄는지 확인하려고 새벽 시장에 나가 청둥오리를 사러 온 척했다. “정확하게는 흰죽지와 검은머리흰죽지예요. 1년에 4만~5만 마리 한국에 와요. 그걸 잡아 파는 거지.” 그는 올무에 걸린 어린 삵과 멧돼지도 구했다.
2023년 11월부터 여섯 달은 멸종위기 해양보호생물인 상괭이에 빠져 살았다. 돌고래보다 덩치가 작은 상괭이가 동그란 눈웃음을 치는 사진 파일이 그의 집에 한가득이다. 물살을 가르고, 물고기를 잡는다. 그중 그가 아끼는 사진은 막 태어난 상괭이 사진이다. 태어나 2주가 되면 사라지는 배냇주름이 옆구리에 선명하다. 이 사진을 찍은 사천 앞바다가 산란지라는 걸 증명하는 중요한 사진이라 언론을 탔다. “궁금증이 하나하나 풀리니까 참 재밌어.”
포기할까 고민할 때 만난 기적들
새를 관찰할 때 그는 건빵과 물만 챙긴다. 12~13시간 하염없이 기다린다. “12시간이 1시간처럼 흘러가. 행복해. 억수로 재밌어.” 2025년 2월 청년 에디가 재킷에 고이 싸안고 온 회색머리아비는 동물병원으로 이송됐다. 올겨울, 남해 바다에서 자맥질하는 그를 다시 만날지 모른다.
김소민 은모래마을책방지기/희망제작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