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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세계로 데려왔다면 우선 밥을 먹여라.’ 어느 스토리 작법서에서 본 말이다. 기억나는 대로 옮겨서 문구는 다를 수 있지만, 등장인물의 식사 장면을 독자에게 보여줌으로써 낯선 세계에 친숙함을 느끼게 하라는 뜻이다. 누구든 밥은 먹기 때문이다. 식사라는 익숙함을 통해 독자가 이야기의 세계도 익숙한 듯 느끼고 낯선 이야기를 계속 읽어나갈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칸새에서’라는 낯선 세계의 두 번째 글에서는 기승전결 내내 먹는 장면이 빠지지 않는 만화를 다뤄보려 한다.
식인식물 타르트, 거대박쥐튀김…
1권 신용정보업자 셋째 페이지에서부터 “배가 고프”다는 독백이 나오는 판타지 ‘던전밥’(쿠이 료코 지음, 소미미디어 펴냄, 14권 완결)의 ‘밥’은 (“참 쉽죠”를 남발하던 밥(Bob) 아저씨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밥이다. 원제에서도 던전 뒤에 ‘밥 반’(飯) 자를 쓴다. 던전에서 먹는 밥인데, 그 재료는 던전에 존재하는 마물이다. 낯설 뿐만 아니라 끔찍하기까지 한 몬스터들 골든브릿지 이 요리가 된다니, 식사는 익숙하지만 재료는 익숙하지 않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흥미로운 이율배반을 맛보게도 한다. 맛보기로 1권의 요리 목록을 써둔다. ‘거대 전갈과 걷는 버섯 전골’ ‘식인식물 타르트’ ‘로스트 바실리스크’ ‘맨드레이크 바실리스크 오믈렛’ ‘맨드레이크와 거대 박쥐 튀김’ ‘움직이는 갑옷 풀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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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이 료코가 쓰고 그린 ‘던전밥’ 13권 표지.


대체로 아는 요리지만 그 재료가 낯설고 징그럽기도 한 마물인 가운데, 1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리는 단연 ‘움직이는 갑옷 풀코스’다. 갑옷을 어떻게 먹는지 설명하려면 ‘움직이는 갑옷’이라 불리는 마물의 비밀을 빌딩중개 밝혀야 한다. 그것의 정체는 갑옷의 연결 부위마다 기생해 관자 같은 근육으로 갑옷을 움직이는 조개를 연상시키는 연체 마물이다. 주인공 일행은 그것을 찌고, 수프 베이스로 우리고 구워서 먹는다. 물론 먹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갑옷’들과 싸우는 과정이 선행된다. 그러니 일행에게 마물식은 승리의 보상이기도 하다. 반면 패배하면 보상도 없다. 그래서 던전 속에는 건강보험납입확인서 이런 시가 흐르기도 한다. “강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다. 밥을 먹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다. 이 모순과는 어떻게 싸워야 한단 말인가 던전밥”.
이처럼 ‘던전밥’은 판타지 세계 속에서 직접 찾아낸 재료로 만든 밥을 먹는 과정과 행위를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현실 세계의 잣대로 묘사하자면 그것은 직접 죽인 사냥감을 해체하고 손질해 요리로 만들어 먹는 육식에 해당한다. 걷는 버섯(발이 달린 거대한 버섯 모양 마물인데 발도 버섯 모양이고 특히 맛있다), 맨드레이크(땅에서 뽑으면 비명을 지르는 인삼 모양 마물인데 비명을 지르기 전에 자르면 맛이 쓰다)처럼 식물에 가까운 마물들이 있긴 하지만 액션도 리액션도 동물의 그것에 더 가깝기 때문에 채식이란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먹기 위해서는 직접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먹을 대상을 만나고 얼굴을 본다. 목숨걸고 싸우는 과정을 거쳐 생명을 빼앗는다는 각오 속에 먹는다. ‘던전밥’은 먹는다는 행위에 대한 사유를 그 모든 구체성과 직접성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먹히는 대상 외면하고 달려드는 포식자가 겹쳐



먹는다는 행위에 대한 사유를 그 모든 구체성과 직접성을 통해 드러내는 만화 ‘던전밥’의 한 장면.


사유는 이어진다. 누군가 먹는다는 것은 먹히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의미다. 주인공 일행이 먹고 마물들이 먹히는 ‘던전밥’의 식사는 “무언가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죽어야만” 한다는 세계의 법칙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초중반의 개별 식사에서는 좀처럼 자각하기 어렵지만, 종반부쯤 주인공 일행과 세계가 모두 악마에게 먹힐 위기에 처하자 법칙은 고개를 돌려 이빨을 드러낸다. 이제 주인공들도 깨닫는다. “다른 생명을 양식으로 살아간다는 걸, 자기 자신도 예외는 아니라는 걸.” 바로 이때 ‘던전밥’은 실질적이든 비유적이든 생존과 그에 수반하는 여러 욕망과 욕구에 의해 ‘먹고 먹히는’ 모든 사건의 알레고리로 읽힐 틈을 내놓는다.
알레고리의 그리스어 어원 알레고리아(ἀλληγορία, allegoria)는 ‘다른 것(allos)에 대해 광장에서 말하기(agoreuo)’라는 뜻이다.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 등 알레고리를 담은 우화들은 동물의 특성을 이야기 속 성격으로 치환해 나태와 방심이 아닌 근면과 성실의 가치를 강조해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말해진 것과 상관없이 들리는 알레고리도 있다. 알레고리적 해석 혹은 충동은 한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를 발견해버리는데, 많은 경우 그것은 감상자의 경험과 생각에서 비롯한다. 먹는 행위가 익숙하기에 이야기 속 먹는 장면에 익숙함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의 경험은 해석에서도 지렛대가 된다.
가령 먹는 장면이 가득한 ‘던전밥’을 보며 ‘먹는 것이 불가능한 인공지능(AI)이 이 이야기의 참맛을 알까’ 생각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욕망을 먹어치우고 끝내 세계까지 먹어치우려는 악마에게서 AI 기업을 떠올리는 것도 AI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진 경험과 생각에서 비롯한 알레고리적 충동의 발현이다. 악마를 통해 왕국을 통제해왔던 인물을 보며 국가와 기업의 엇나간 협치를 떠올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적어도 나는 ‘던전밥’의 빌런 캐릭터에게서 현실 속 포식자가 겹쳐 보이는 것을 참기가 어려웠다.
분명 충동이지만, 그것은 작품 이해와 연결된다. 작품에는 “빼앗을 각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야기 구조 속에서 ‘먹을 각오’와 등치된다. 먹는다는 것은 목숨을 빼앗는 일이니까. 그런데 나는 우리 세계의 포식자들이 제대로 된 ‘먹을 각오’도 없이 욕망의 명령에만 복종해 먹어치우는 것만 같았다. 직접 싸우지 않고 대리전을 펼치고, 먹히고 빼앗기는 대상의 얼굴을 외면하고, 먹는 행위의 후과를 떠올리지 않은 채 먹어치운다. 특히 국가가 추진하는 개발사업이 그렇다. 제주 해군기지는 강정마을 구럼비를 먹어버렸고, 서울 용산4구역 개발도 철거민과 경찰의 삶을 ‘각오’ 없이 먹어버렸다. 최근 새만금 신공항 건설 계획에 대한 취소 판결문(서울행정법원 행정7부 재판장 이주영)을 보며 이 역시 ‘먹을 각오’ 없이 그저 도민들의 욕망을 핑계로 먹으려 달려든 계획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공항 백지화’ 이끈 새와 사람은 진수성찬을 즐기길



노랑부리저어새와 검은머리물떼새의 만찬을 응원한다. 전북지방환경청 앞 새만금 신공항 부동의를 촉구하는 농성 천막 속에 걸려 있던 광주 기후정의 활동가 이랑의 만화. 알맹상점 금자 제공


‘생각 좀 하고 먹어!’ 속으로 외치고 “세계는 먹는 자, 먹히는 자가 균형을 이루어야 해. 과도하게 먹는 자는 멸망할 운명이야” 같은 대사에 맞장구를 치며, 알레고리적 충동을 도저히 참지 못한 상태로 만화를 읽는 일은 나도 처음이었다. 알레고리적 독해를 유발하는, ‘먹기’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담긴 ‘던전밥’이기에 가능했을 경험이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먹는 행위 자체가 죄일 리 없다. 과도한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먹을 각오’에 충실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얼마든지 먹어도 좋다. 특히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를 이끈 새들과 공동행동 소속 시민 1297명은 진수성찬을 즐기길 바란다. 남은 재판도 이겨서 계속 즐기면 더더욱 좋겠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만화의 칸과 칸 사이, 칸새에서 출발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6주마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