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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거장 감독 허우샤오시엔의 뮤즈로 세계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았던 배우 서기(수치)가 이번에는 감독으로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다. 배우로서 뽐내던 화려한 드레스 대신 수수한 정장을 입고 등장한 모습에서부터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각) 세계 첫 은퇴설계
공개로 베네치아에서 상영된 그의 첫 연출작 ‘걸’은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은 자전적 이야기로, 10년에 걸쳐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신인 감독의 미숙한 연출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지만, 가정폭력의 희생자인 딸과 엄마 사이에 흐르는 애증의 복잡한 전류를 담아내는 연기 연출이 뛰어난 작품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신설한 경쟁 부문에서도 한국 관객과 만큐렉소 주식
난다. 지난 5일 리도섬 앞바다가 보이는 ‘걸’ 배급사 임시 사무실에서 밝은 얼굴의 서기를 만났다.



지난 5일 낮(현지시각)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에서 만난 서기(수치). 감독 데뷔작 ‘걸’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베네치아/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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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샤오시엔 감독과 작업하고 있을 때 감독님이 연출을 해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의례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2년 뒤에 ‘준비하고 있냐’는 말씀을 듣고 ‘진심이셨구나. 정말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0대 때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떠난 뒤 에로 영화 등에 출연하며 신산한 젊은 시절을신공항관련주
보내던 서기를 ‘밀레니엄 맘보’(2001), ‘쓰리 타임즈’(2005), ‘자객 섭은낭’(2015) 등에 출연시키며 세계적 배우로 성장시킨 허우샤오시엔은 감독 서기까지 탄생시킨 “아버지이자 스승 같은 존재”였다.
“허우 감독님은 현장에서 ‘연기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말아라. 그냥 그 인물이 되어라. 뭔가 잘못됐다면 그건 배우가 아니라 감황금성공략법
독인 내 책임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 말은 제가 연출을 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캐릭터나 스토리를 넘어 텅 빈 냉장고, 주변 가게 등 영화의 모든 부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현실적으로 구성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배우들과도 오랫동안 이야기했죠.”



서기의 장편 연출 데뷔작 ‘걸’ 스틸컷.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제공


대만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9m88(조앤 바바)는 남편에게 맞고 사는 분노와 짜증을 어린 딸에게 전가하는 젊은 엄마 역을 뛰어나게 소화했다. 그는 “촬영장에서 감독님이 장면을 설명하다가 무심코 연기를 섞어 보여주면 놀라기도 하면서 큰 압박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경험 많고 뛰어난 배우 출신 감독과 작업하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었어요. 촬영 초반에는 감독님이 원하는 걸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컸는데, 중반이 되면서 내 방식대로 이 역할을 해석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감독님은 ‘딸처럼 울면 안 된다’고 강조했어요. 자신의 운명을 대물림할 수 없다는 엄마의 의지를 담아야 했으니까요.”
서기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당시 어린 소녀였던 자신에 중심을 뒀지만, 점차 부모에게로 비중을 많이 옮겼다고 했다. “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소녀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샤오리의 투쟁을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부모와의 관계와 갈등을 늘려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딸은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이 문득 왔어요. 어머니는 18살 때 저를 낳았는데,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가르쳐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제가 아이를 낳았다면 엄마의 방식을 답습했겠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래서 이야기의 끝에는 샤오리가 집을 떠나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배우 겸 감독 서기(수치)가 자신의 첫 연출작 ‘걸’에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4일(현지시각)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레드 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베네치아/AFP 연합뉴스


그는 편집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그렇게 미워하던 어머니에게 공감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밝히면서 이제야 비로소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된 모녀관계의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샤오리가 엄마한테 ‘우리 도망치면 안돼요?’라고 물었을 때 엄마가 ‘왜 그렇게 옷을 입었냐’고 나무라는 장면은 제가 어릴 때 똑같이 엄마와 나눴던 대화였어요. 엄마들에게는 많은 비밀과 알려지지 않은 고통이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 서기의 부모님은 영화와 달리 아직도 함께 산다고 한다. “아버지는 여전히 알코올 중독이지만 이제는 엄마를 때릴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고, 엄마도 나이가 들면서 맞서 싸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란다. “제가 다른 영화에 출연했을 때 엄마가 촬영장에 온 적이 있었는데, 하필 남편 역 배우에게 심하게 맞는 장면이 있어 제작진이 엄마에게 보지 말라고 말렸어요. 그때 엄마가 보시고는 ‘이건 아무 것도 아니네. 난 더 세게도 맞아봤어’라고 태평하게 말씀하셨죠.”
이처럼 “나 자신도 어머니와 화해했고 어머니도 본인 자신과 화해했다고 생각” 하지만, ‘걸’ 시사회에 어머니를 초대할 용기는 아직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엄마와 껴안고 같이 울게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어머니가 제 인생의 이 중요한 성취를 함께하고 싶어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사람은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하잖아요.”
마지막으로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서기는 이렇게 답했다. “이 영화가 아이들과 어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들이 더 나은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희망을 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영화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베네치아/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