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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부터 외국인 관광객, 노년층까지 다양한 쇼핑객들이 노점과 빈티지 숍을 오가며 '득템'을 위한 사냥에 나선 모습이었다.



사진=유지희 기자


이곳은 흔히 '동묘 구제시장' 또는 '동묘 벼룩시장'으로 불린다. 수많은 노점과 빈티지숍이 밀집한 이곳은 최근 외국인 방문객 증가와 빈티지 열풍에 힘입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어닝서프라이즈
한 노점상인이 비닐봉투 가득 담긴 구제 옷을 바닥에 쏟아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한 젊은 여성은 비닐장갑을 낀 채 셔츠, 바지, 재킷을 하나하나 들춰보며 몸에 대보는 등 본격적인 쇼핑에 나섰다. 상품 가격은 2000원~5000원 사이였다.
가게 안에 진열된 구제 의류는 브랜드나 관리 상태에 따라 가격대가 달랐다. 일부 제품은정글북
최대 몇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기자가 둘러본 동묘 구제숍에서는 셔츠 한 벌이 1만~5만원 선, 바지는 1만~2만5000원 선에 판매되고 있었다.
◇"5만원인 줄 알았는데 5000원이야?"…日 댄서도 놀란 동묘 물가



출처=엠넷 '월드오브 스트리트우먼파밸류스타
이터'


국내외 젊은 세대에게 동묘는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다. K팝 스타의 방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증샷, 방송 출연 등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으며 '성지'로 회자되는 동시에 특별한 문화적 상징성까지 갖게 된 장소다.
지난 24일 방송된 Mnet '월드오브 스트리트우먼파이거래량지표
터'에서는 일본 댄스 크루 '오사카 오죠갱'이 동묘 시장을 찾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이들은 일본 댄서 이부키의 일일 코디네이터로 나서 함께 구제 옷을 쇼핑하며 스타일 배틀을 벌였다.
이부키는 "여기가 지드래곤이 픽(선택)한 패션의 명소"라며 서울 종로구 동묘 구제시장을 직접 소개했다.
실제로 동묘는 2013년 MBC '오션파라다이스게임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 편에서 지드래곤과 정형돈이 함께 구제 옷을 고르고, 골목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며 주목받았던 장소다. 방송 이후 12년이 지났지만, 지드래곤의 흔적은 여전히 동묘 곳곳에 남아있다.
길거리에서 눈여겨봤던 가게에 들어선 이부키는 갈색 퍼 재킷을 입었는데 직원이 "이건 지드래곤이 입었던 옷"이라는 설명하자 "나랑 지드래곤이 같은 옷을?"이라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멤버들은 호피 무늬 재킷을 고르던 중 가격을 5000엔(약 4만6000원)으로 착각했다가, 실제로는 5000원이라는 말을 듣고 "5000엔 줄 알았는데 5000원이라니, 너무 싼 거 아니냐"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여기 지드래곤 왔던 곳이래"라는 말과 함께 구제 옷 가게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날 동묘를 찾은 고등학교 3학년 김모(18) 군은 "경주에서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왔다"며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알게 됐다. 빈티지 옷이랑 액세서리를 구경하려고 왔고, 몇 개는 구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주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온 대학생 김성은(21) 씨도 "평소 빈티지 옷을 자주 사는 편은 아니지만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왔다"며 "다른 빈티지숍은 가봤지만, 동묘는 처음이다. SNS에서 보고 알게 됐고,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사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집트인도 온다"…빈티지숍 사장도 놀란 인기



사진=유지희 기자


일본인 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도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알렉사(28)는 "한국 여행을 알아보던 중 이곳을 알게됐고 이번 여행에서 꼭 들르고 싶었다"며 "직접 와보니 정말 저렴하고 개성 있는 옷이 많다. 셔츠를 하나 구매했다"고 말했다.
20년째 동대문에서 노점 장사를 해온 60대 박모 씨는 "예전부터 젊은 외국인 손님이 많았는데, 코로나 때 잠잠했다가 최근엔 오히려 더 늘었다"며 "요즘은 외국인 손님이 절반 이상이다. 특히 젊은 외국인들이 부쩍 많이 온다"고 말했다.
동묘에서 6년째 빈티지 숍을 운영 중인 권준원(48) 씨도 "주말, 평일 가릴 것 없이 손님이 많다. 최근엔 글로벌 타깃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 촬영이 진행되기도 했다"며 "외국인 손님만 하루에 10팀 넘게 올 때도 있다. 이집트,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국적도 다양하다. 다들 어디서 보고 오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온다"고 전했다.
3년째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최민기(30) 씨는 "구제 옷을 사러 오는 외국인이 진짜 많다. 주말에는 50명 넘게 오는 경우도 있다"며 "원피스, 가방 등 아이템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구매한다. 동대문 관광하러 왔다가 동묘까지 이어서 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빈티지 성지' 동묘, 검색량도 상승…글로벌 패션계 주목하기도



출처=에센스(SSENSE) 인스타그램


동묘의 매력은 단순히 '싼 옷'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곳은 세계적인 패션계에서도 주목하는 거리 패션의 보고다.
지난해 글로벌 패션 플랫폼 에센스(SSENSE)의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동묘 거리에서 포착한 패션 신이 소개됐다. 사진 속 어르신들은 고양이 패턴의 넥타이, 혼다 로고가 박힌 가죽 재킷, 스프링이 달린 운동화 등 예상을 깨는 스타일링으로 눈길을 끌었다.
해당 사진은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포토그래퍼인 홍석우가 촬영한 것으로, 에센스 측은 "유행을 타지 않는 패션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실제로 세계적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 역시 한국 방문 당시 동묘에서 영감을 받은 바 있다.
그는 거리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의 믹스매치 스타일에 반해 자신의 SNS에 사진을 공유하며 "스포티함과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국 동묘의 과감한 스타일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경지"라고 극찬했다.
이후 그는 2019년 컬렉션에서 동묘의 패션 감각을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검색량도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다. 이날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5일까지 '구제', '빈티지' 관련 온라인 언급량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4.79%, 25.2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묘시장' 언급량도 1.39%가량 소폭 늘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