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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다. 것은. 가운데 기억을 이내 바랬으니까…….” 회사에서1920년 6월29일~7월4일 안드레예프 반란군이 증기선을 이용해 암군강을 거슬러서 케르비로 향하는 모습을 그린 김영주 화백의 삽화.(동아일보 1958년 8월30일치 4면) 임경석 제공


케르비(현재 러시아 폴리나 오시펜코)는 타이가 침엽수림 깊숙이 위치한 큰 마을이었다. 북위 52도에 있는 추운 곳이었다. 일찍이 금광이 발견돼 사람이 몰려들었다. 암군강 수로를 이용할 수 있으므로 교통은 나쁘지 않았다. 암군강은 아무르강 하류 좌안으로 합하는 지류다. 두 강의 합류점에서 상류 600㎞ 지점에 있는 케르비 마을은 니콜라옙스크 사건으로 독이 오른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도 유리한 곳이었다.
일본군과 전투 중인 빨치산, 식량은 석 달치 신용불량자 확인방법 뿐
1920년 6월16일, 니콜라옙스크를 떠난 지 보름 만에 케르비에 도착한 트랴피친 사령관은 여러 과제에 직면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일본군의 예상 공격로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암군강의 긴 수로 곳곳에 3천 명 규모의 빨치산 부대를 배치했다. 일본군이 공격해온다면 가장 먼저 싸움터가 될 두물머리 근처에 제정 시대 포병 소위 출신 내생에 봄날 의 안드레예프(36)가 이끄는 3개 중대 450명을 주둔시켰다. 또 두물머리로부터 100㎞ 지점에 있는 우딘스크 마을에는 암군강 하구 전역을 관할하는 군관구 지휘부와 제1연대 본부를 두었다. 뚫려서는 안 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난민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케르비 마을 주민은 1500명 규모인데, 니콜라옙스크에서 몰려온 피란민이 5500명 상호저축은행이자 이었다. 원래 주민보다 네 배 가까이 많은 사람이 복작거렸다. 인근 금광 마을에도 피란민 3200명이 모여 있었다.1
케르비의 경제력만으로는 부양할 수 없는 큰 인구였다. 주거와 식량을 확보해야만 했다. 밀가루와 곡물 비축량은 석 달 분량이었다. 9월 중순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때쯤이면 식량도 떨어지는데다 겨울이 코앞에 다가올 것이다. 감사카드 대책 없이 맞이한다면 파국이 닥칠 터였다. 2차 피란을 주선해야 했다. 니콜라옙스크와 하바롭스크로 나아가는 손쉬운 길은 일본군 때문에 막혀 있었다. 남은 길은 하나, 블라고베셴스크로 가는 험한 경로뿐이었다. 육로로 얌알린산맥을 넘어 셀렘자강 상류의 예킴찬 마을까지 390㎞를 갈 수 있다면, 그곳에서부터는 목표 지점까지 수로로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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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9일 케르비의 암군강가에서 반란군 쪽에 총살당한 트랴피친 사령관과 그 동료들. 임경석 제공


트랴피친 사령관이 놓친 단 한 가지
트랴피친은 당면한 여러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해나갔다. 단 하나만 제외하곤 말이다. 빨치산 부대 안에서 은밀히 싹트고 있던 반란 음모가 그것이다. 아무르강과 암군강의 두물머리 방어를 책임지는 안드레예프가 반란의 진원이었다. 그는 니콜라옙스크 해방 전에는 백위군 포병 장교로서 츠니라흐 요새에서 일했고, 해방 이후에는 적위군 편에 서서 시내 경찰서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그는 6월28일 주둔지 크냐제보 마을에서 병사 총회를 열어, 트랴피친을 축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명분을 내걸었다. 트랴피친은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고, 동료라 하더라도 그에게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서슴없이 불법적으로 처형해온 범죄자라고 주장했다. 또 니콜라옙스크 파괴와 철수를 통해 수많은 난민을 대책 없이 위험에 빠뜨렸고, 자기네 수뇌부만 금광의 금덩이를 빼돌려 블라고베셴스크로 도주하려 한다고 폭로했다. 안드레예프 휘하의 빨치산 병사들은 대부분 니콜라옙스크 시내 출신자였다. 안드레예프와 그를 지지하는 장교 그룹의 선동 연설은 병사들 내부에 큰 동요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이 사안을 다루기 위해 케르비에서 빨치산 총회를 열자는 제안이 통과됐다.
무장한 반란군이 은밀하게 암군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증기선을 이용한 이동이었다. 군관구 사령부와 제1연대 본부가 있는 우딘스크가 첫 장벽이었다. 하지만 반란군은 이 장벽을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었다. 7월1일 군관구 사령관 사소프, 제1연대장 아무로프를 비롯한 지휘부 장교들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그뿐 아니라 병사 총회를 열어 대세를 장악할 수 있었다.
똑같은 일이 케르비에서도 되풀이됐다. 그곳에 주둔하는 본진 부대들은 반란군의 이동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아군이었기 때문이다. 일본군 전초선에서 600㎞ 떨어진 후방이었다. 아군의 이동을 경계할 이유가 없었다. 그 덕분에 반란군은 7월4일 마침내 케르비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적위군 지휘부가 새벽을 틈타 일제히 체포됐다. 트랴피친 사령관은 숙소 겸 지휘처로 사용하던 증기선 ‘암구네츠’호 선상에서 총격전 없이 순순히 포박당했다고 한다. 7월6일에는 케르비에서 대규모 적위군 총회가 열렸다. 트랴피친을 지지한다고 지목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체포된 상태에서 열리는 군중집회였다.



여성 혁명가이자 니콜라옙스크 적군 참모장 니나 레베데바. 임경석 제공


한때 동료들 손에 죽임당한 혁명가들
적위군 총회 결과, 트랴피친과 그 지지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재판에 회부됐다. 군대와 노동조합, 케르비 마을 주민들 속에서 50명당 2명의 대표가 선출돼, ‘103인 법정’이라고 부르는 ‘사할린주 인민재판소’가 조직됐다. 7월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재판이 열렸다. 사법기관이라기보다는 다수 집단의 총회 회합에 가까웠다. 심리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피고인을 겨눈 가장 큰 혐의 사항은 니콜라옙스크에서 이뤄진 러시아인과 일본인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었다. 트랴피친은 시인하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의 경우 반혁명 범죄를 저지른 분자들이 혁명 와중에 응분의 처벌을 받은 것이고, 일본 민간인들의 사망은 격렬한 시가전 중에 파생된 일이라고 답했다. 죄가 있다고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재판 결과 트랴피친을 비롯한 빨치산 지휘부 성원 7명의 유죄가 인정됐다. 트랴피친의 죄목은 독재, 권력남용, 소비에트 정부 정책에서의 이탈(극동공화국 설립 반대) 등이었다. 형량은 전원 총살형이었다.
형은 즉각 집행됐다. 재판이 끝난 그날, 1920년 7월9일 늦은 밤이었다. 케르비의 암군강 강변에 마련된 형장을 둘러싸고 군중이 모여들었다. 케르비 거주민과 니콜라옙스크에서 몰려온 피란민, 빨치산 대원이었다.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러시아인 혁명가 7명이 한때 동료였던 사람들의 손에 총살당하고 말았다.
희생자 중에는 여성 혁명가이자 니콜라옙스크 적위군 참모장인 니나 레베데바(25)가 포함돼 있었다. 그는 트랴피친의 배우자이기도 했다. 표도르 젤레진(35)도 그 속에 있었다. 해방된 니콜라옙스크의 혁명위원회 위원장이자 볼셰비키 당원이었다.
국제주의 정신 넘쳐나던 빨치산 부대에 균열
케르비 정변은 니콜라옙스크 한인 무장부대 ‘대한독립군’의 내부에 균열을 가져왔다. 도저히 메우기 어려운, 깊은 균열이었다. 한인 부대가 독자적인 대대급 대한독립군으로 편성된 것은 니콜라옙스크 3월 전투가 끝난 직후였다. 니콜라옙스크 한인회가 작성하고 트랴피친 사령관이 서명한 1920년 3월22일자 ‘한인 의용군 편성에 관한 지침’이 있다. 거기에는 대한독립군의 운영 원칙이 기록돼 있다. 거기에는 한인과 러시아인 사이의 국제주의 정신이 넘쳐흐른다. 백군과 일본 침략자에 맞서는 투쟁에서 두 나라 인민이 일치된 태도를 갖는다는 점이 명시됐다. 쌍방이 견지해야 할 의무도 규정됐다. 러시아 적위군은 “한인 부대가 러시아 영토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본인과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한인 부대를 무장시키고 보급할 의무를” 진다고 썼다. 한국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보급을 통해 지원한다는 말이었다. 그 반대급부로 대한독립군 부대는 “니콜라옙스크 지구 적군 사령부에 직접 복종”할 것을 서약했다.2
이때 편성된 대한독립군 부대원 수는 430명이었고, 이들은 4개 중대로 편제됐다. 1개 중대당 110명이 약간 못 미치는 규모의 병사들이 소속됐음을 알 수 있다. 부대 지휘는 러시아인과 한인이 공동으로 맡았다. 러시아인 사소프(34)가 사령관이 되고, 한인 박일리야가 참모장을 맡았다. 사소프-박일리야 체제라고 부를 수 있는 지휘부였다. 이 지휘부는 트랴피친 사령관에 대한 신뢰감과 유대감이 강렬했다.
예컨대 사소프는 그해 7월1일 우딘스크에서 군관구 사령관으로 재임 중 반란군에 무장해제를 당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한인 무장부대의 지휘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7월9일 ‘103인 법정’에서 트랴피친의 지지자로 지목돼 총살형 선고를 받고 처형당한 7명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했다.
안드레예프의 반란에 호응해 적극 참여한 한인 무장부대도 있었다. 그중 박병길이 대표적 인물이었다. 박병길과 그가 이끄는 한인 부대는 암군강 하류의 두물머리에서부터 안드레예프의 반란 행동에 보조를 같이했다. 반란군 내에서 박병길의 기여도는 높았다. 1920년 7월1일 우딘스크에서 열린 반란군 병사총회에서 박병길은 임시군사혁명본부 9명 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임됐다. 반란군 전체를 지휘하는 최상위 집행부의 일원으로 올랐던 것이다.
반란군 내에서 박병길의 핵심적 역할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는 7월4일 케르비에 정박 중인 증기선 ‘암구네츠’를 습격해 트랴피친을 생포한 7명의 체포조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 체포조에는 반란군 쪽 임시군사혁명본부 위원이 3명(아노시킨·레오도르스키·박병길)이나 포함됐을 만큼 공들여 인선한 형적이 보인다.
군사정변이 성공한 뒤, 박병길의 행동은 보상을 받았다. 대한독립군 지휘부를 개편했는데, 그 지휘부에 이름이 올랐다. 처형된 사소프 대신에 레오도르스키가 한인 무장부대 사령관으로 취임했는데, 머지않아 박병길이 그 자리의 뒤를 이었다. 박병길 사령관과 함께 새로운 참모장에는 김인노켄챠가 취임했다. 박병길-김인노켄챠 체제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지휘부였다.
그러나 박병길-김인노켄챠 지휘부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트랴피친의 죽음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한인 병사들의 집단심리에 번번이 부딪혔던 것이다. 결국 대한독립군 제4중대가 집단 탈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트랴피친 지지자로 지목돼 체포된 러시아인 수감자 약 60명을 블라고베셴스크로 압송하는 중에, 호송 임무를 맡은 한인 제4중대가 집단으로 사고를 친 것이다. 수감자들을 풀어주고 그들과 함께 타이가 침엽수림 속으로 도주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10일간 추적했으나 남은 건 내부 적대감뿐
박병길은 직속 부대원들과 함께 추격 작전에 나섰다. 도주 예상 경로를 10여 일간 추적했으나, 탈영병들의 종적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부득이 아무 성과도 없이 케르비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결국 트랴피친 처형 사건 이후 대한독립군의 한인 병사들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대한독립군의 미래에 어두운 구름이 떠올랐다.
참고 문헌
1. Керби. Амгуньский террор и бандитизм ( 케르비 , 암군강 지역의 테러와 강도 행위 ), https://lektsia.com/15x7677.html 2025년 9월22일 열람.
2. “Инструкция по формированию добровольческих отрядов корейцев”(한인 의용군 편성에 관한 지침), Партизанское движение на Нижнем Амуре(아무르강 하류의 빨치산 운동), https://lektsia.com/15x766c.html 2025년 9월15일 열람.
3. 7인 체포조 명단은 레오도르스키, 살라즈킨, 코발료프, 박바실리, 예시포프, 아노시킨, 피샤예프다. 이 중 박바실리가 박병길이다.
글·사진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독립운동 열전’ 저자
*임경석의 역사극장: 한국 사회주의 운동사의 권위자인 저자가 한국 근현대사 사료를 토대로 지배자와 저항자의 희비극적 서사를 풀어내는 칼럼입니다.